목판인쇄가 싹트게 되었다. 이는 신라부터 보급되었다.
1. 목판인쇄 판각 및 박아내는 법
통나무 자르기 → 널판켜기 → 널판말리기 → 대패질하기 → 글씨쓰기 → 글자 세기기 → 손잡이 달기 → 먹칠하기 → 책찍기 → 글자 바로잡기 → 책꿰메기
2. 판각과정
나무 중에서 필요한 부분을 가려내어
인쇄와 제사 때 쓰이는 향과 축문·인신
등을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
3.2 주자소
고려 말기의 서적에서 비롯해 설치된 활자의 주조를 관장하던 관서
-고려 : 고려시대에는 목판인쇄술을 토대로 한
간행이 주가 됨
-조선 : 활자인쇄술의 창안으로 인해 목활자,
금속활
인쇄는 비록 성공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단점과 실패를 줄기차게 연구하여 마침내 고려에서 주자를 만들어 금속활자인쇄를 실시케 하였으니, 교니활자의 인쇄시도가 활자인쇄사에서 기원이 된 점은 그 의의가 지대하다 하겠다. 필승의 교니활자 이후 나온 활자인쇄로서는 금속활자인쇄, 목활자인쇄
1. 주제선정의 배경
한국은 12세기 초 세계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었고,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현존하는 최고(最固)의 금속활자인쇄본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결』역시 고려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반면에, 뒤늦게 만들어진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는 서양 문화에 큰 파급효
글자를 써서 여러 벌 만든다면 여러 사람이 보고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해질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여러곳에서 나누어 보고도 그 뜻을 알 수 있게 하려면 다른 사람이 그 뜻을 알 수 있도록 나누어 주자는 생각과 원본은 귀중하게 모셔 놓자는 생각이 인쇄술을 발명하게 한 것 같다.
금속활자인쇄라면 그 창안시기로 보거나, 슬기로운 지혜로 꾸준히 개량 발전시킨 면으로 보거나, 그 종류가 다양하고 기법이 독측했던 면으로 보거나, 우리나라가 단연코 세계에서 독보적으로 활자왕국의 위치를 지켜왔으니 새삼 자부심을 갖게 한다.
Ⅱ. 목판인쇄의 역사
1.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
글자가 하얗게 나타나고 갓도리와 글자 아닌 부분이 검게 나타난다. 이와는 달리 도장을 새기듯이 나무판에 글자를 외로 새겨서 판을 만들고 채우고 그 판에 먹을 바로 칠하고 종이를 대고 밀어내면 글자 획은 검게 나타나고 갓도리는 희게 나타난다. 이것이 목판인쇄이다. 도장 찍는 이치와 같다. 이
(1) 목판인쇄(木板印刷) 기원의 전제적 여건
문화의 전파와 발달은 전적(典籍)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초기에 전적을 스스로가 베껴서 이용하였기 때문에 별로 유통되지 못하고 자급자족에 그쳤으나, 인지(人智)가 발달함에 따라 책의 수요가 늘어나기 시작하였으며, 그 도는 문화수준
2.1.2 송
▪ 태조
오대 난리로 상실된 제국의 도서를 수습했다. 망실된 서적을 수집하기 위해 태조때부터 휘종때까지 서적의 헌납을 장려했다. 삼관에 후주 장서 13,000여 책이 수장되었다. 여러 차례 결서목록을 편찬하여 모두 6705부 73,877책으로 양적으로 증대되고 교수된 선본을 갖추었다. 한역 대장